아시아 최초, 스노보드 평행 종목 세계 랭킹 1위, 국가대표 이상호 선수

대한민국 최초였고 아시아 최초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대한민국 국가대표 이상호는 스노보드 평행 종목 세계 랭킹 1위라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했다.

정점에 오른 사람에게서 나오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총명하게 서린 안광, 견고하게 차오른 투지, 기민한 동작 속에서 퍼져나오는 기세.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좌중을 압도하며 거침없이 설원을 질주하는 이상호.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대한민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로 메달을 쟁취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가대표이다.

배추 보이라고 하면 아실까요?
평창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배추 보이 이상호입니다. 제 이름보다 배추 보이를 더 많이 기억해주셔서 이렇게 꼭 인사하는 것 같아요. 이 별명은 아주 예전 인터뷰에서 그냥 재미있게 해보자며 기자님이 붙여주신 건데 의미도 좋고 들을 때 각인도 더 잘되어서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일단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잘 다녀왔습니다. 포디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어요. 예선에서 워낙 압도적인 1위로 들어온 탓에 출국 때보다 더 메달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해주셨는데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그런 응원과 기대는 정말 많은 힘이 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와는 또 다르지만 그래도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이 전보다 더 크게 관심 받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래도 요즘은 많은 분이 메달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경기를 치른 모든 국가대표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세요. 저보다 더 아쉬워해주기도 하고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죠. 우승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한 경기를 보여주는 모습을 이제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특히 더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마음을 우리 선수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최종 순위 5위로 귀국했지만 아쉽거나 후회는 없어요.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리고 기억해주세요. 배추 보이 이상호는 여전히 스노보드 평행회전·대회전 종목 세계 랭킹 1위라는 것을.

‘최초’ 타이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그 타이틀을 처음 거머쥐었을 때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와 내가 최초구나’ 하면서 조금 신난 정도였죠. 사실 제가 마음이 크게 들뜨고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타입은 아니에요. 하지만 메달을 따고 분명 모든 것이 나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스노보드에 대한 관심 그리고 혼자 외롭게 훈련하면서 그토록 간절했던 후원과 인프라 등.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배추 보이가 된 건 강원도 배추밭을 개조한 눈썰매장에서 보드를 연습했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코치는 저희 아버지였고요. 지금은 자랑스러운 국가대표가 되었지만, 제가 운동을 시작할 때 우리나라 설상 종목 특히 스노보드는 성공한 사례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불모지였어요. 그래도 저는 꼭 스노보드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노보드는 곧 저 자신이니까요.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을 앞세워 포기 없이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빛나는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달라진 점은 후배들이 많이 생겼다는 거예요. 으쓱한 동시에 조금씩 부담되기 시작합니다.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제가 가진 대한민국 최초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결국 지속적인 성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다시 저만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야죠.

스노보드가 아직도 제일 재미있어요
다른 건 없습니다. 그게 제 모든 원동력이에요. 그래도 경기 전에는 ‘내가 최고다, 할 수 있다’고 되뇌면서 스스로 긍정적으로 힘을 북돋아주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굳게 믿는 것이 한 가지 있어요. 바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훈련장에 들어가면 아직도 제가 가장 열심히 운동한다고 자부할 만큼 온몸을 쥐어짜며 최선을 다해요.
타고났다. 천재다. 물론 이런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재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제가 스노보드를 사랑하는 것과 기울인 노력의 시너지가 메달이 되었다고 하면 그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먼 목표를 하나 말하자면 스노보드 종목에 무언가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아가 체육계에 전반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전? 저는 노력하는 모든 과정이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꼭 금메달이 목표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후회 없을 만큼 쏟아냈다면 그리고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결과를 보았다면 그것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바로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받은 국민의 응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해보세요.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응원을 받고 돌아온 배추 보이 이상호가 더 큰 응원으로 힘껏 보답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