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IS IMPOSSIBLE

지난 4월 21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제51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여자 400m 허들 결선에서 1분 1초 88을 기록하며 가장 선두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가 있다. 이 선수는 전날 육상 400m 경기에서도 55초 96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대회 2관왕의 주인공, 바로 육상 여신으로 불리며 최근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김지은 선수였다.
“작년 저의 육상 400m 결승 경기가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는데 그 영상이 그렇게 이슈가 될 줄은 몰랐어요. 이제 조회수가 700만에 가까웠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 기분은 좋아요.”
대답과는 다르게 그녀의 표정이 덤덤했다.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는 SNS도 주목 받게 되고 방송 출연부터 광고 모델까지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내며 어깨가 으쓱해질 법도 한데 김지은 선수의 표정은 덤덤함을 떠나 오히려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운동선수이니까요. 운동 외에 바깥세상은 보지 않아요. 관심은 정말 감사하지만 어쨌든 저는 15년 넘게 달리고 있고 운동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큰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요. 누군가 저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서 다음날 할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김지은, 400m 육상 최강자
하루 훈련 일과를 물으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쏟아졌다.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9시까지 운동장으로 출근하고 9시 30분부터 준비 운동 및 몸풀기 운동을 시작한다. 두 시간이 넘게 보조 운동 및 보강 운동을 이어가다가 낮 12시쯤 본격적으로 인터벌, 거리주 훈련을 시작하는 김지은 선수는 한 시간의 기술 훈련을 마친 후 웨이트 트레이닝을 이어간다. 그리고 오후 2시 반에 점심식사 시간을 갖는 것이 하루 루틴이다.
“오후 3시 반부터는 병원에 가서 재활 치료를 하고 근육 마사지도 받아요. 저녁 7~8시가 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퇴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훈련하고 일요일 딱 하루 쉬어요. 무얼 하냐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요. 저는 연습이라고 해도 실전처럼 전력을 쏟아붓기 때문에 모든 일과가 끝나면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버려요. 훈련이 없는 날은 온전히 집에만 있는데 다른 이유는 없어요. 다른 곳에 에너지를 소모할 힘이 없으니까요.”
김지은 선수의 주 종목인 400m, 그중에서도 400m 허들은 총 10개의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단거리 중에서도 가장 고난이도 경기이다. 단거리인 만큼 빠른 스타트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최고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양발을 번갈아가며 허들을 넘어야 하므로 뛰는 높이와 착지 자세, 리듬감과 타이밍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야 좋은 기록이 나온다.
“파워풀하게 달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맞는 말 같아요. 저는 훈련을 통해 계속해서 힘을 쌓고 그걸 경기에서 폭발시키거든요.”

김지은 선수는 본격적인 기술 트레이닝 전후로 충분한 스트레칭과 리커버리 시간을 갖는 것이 자기 훈련 루틴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한다. 또한 육상 400m와 400m 허들은 전신을 모두 사용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체력, 스피드, 근지구력 등 신체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훈련이 필수적이라고도 덧붙였다.
“육상은 아무래도 스피드 그리고 파워를 올리도록 도와주는 훈련이 가장 중요해요. 밴드를 다리에 끼고 빠르게 피치 연습을 하거나 앞으로 치고 나가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스피드 트레이닝이고 파워와 순발력을 올리는 훈련으로는 점프 동작이 큰 도움이 돼요. 달릴 때 지면을 때리는 힘의 정도가 강할수록 속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거든요. 점프 훈련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발목 강화에도 탁월하다는 점이에요. 부상을 방지할 수 있으니까요.”
김지은 선수는 부상으로 인해 한때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다. 몸풀기와 리커버리에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부상을 예방하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편안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첫 육상을 시작할 때는 주 종목이 100m, 200m였는데 실업팀 입단 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종목 전환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부상 중에도 선수로서 성적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거듭하다 보니 이제 400m가 저에게 더 잘 맞는 종목이 된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맞다. 김지은 선수는 2015년, 부상을 딛고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당당하게 400m 부문 금메달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2020년 경북 예천육상대회에서는 무려 4관왕에 올랐다. 연이은 대회에서 메달을 쟁취해내는 그녀는 현재 명실상부한 여자 육상 400m의 최강자이다.
“사실 처음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는 몸이 지금만큼의 컨디션으로 올라왔을 때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약간의 부담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작년부터 기량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점차 대중에게 저를 보여주는 것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당연한 것 같아요. 운동선수는 운동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니까요.”
김지은, 1992년 6월 16일생
김지은 선수가 처음 육상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운동장에서 또래 남자들을 제치고 가장 앞서 달릴 때 큰 희열을 느꼈고 그때부터 달리기가 좋아졌다는 그녀는 엘리트 선수 생활을 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최근 들어 더 운동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작년부터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어요. 통상적인 훈련에서 벗어나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부족한 점을 찾아 맞춤 트레이닝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게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육상이 더 재미있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녀는 더욱 운동 생각만 하게 된다고 말을 이어 갔다. 주변의 관심, 방송계의 러브콜 속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그날의 보강 운동과 재활 운동 스케줄을 짜는 것이라는 김지은 선수. 그녀를 궁금해하며 방송 출연을 원하는 팬들은 아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을 잘 안 만나요. 운동장에서 만나는 동료들이 전부예요. 생활이야 늘 똑같고 앞서 말했듯이 훈련이 없는 날은 집에 누워만 있으니까요. 놀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죠. 사람도 좋아해요. MBTI도 E로 시작하는걸요? 나머지 뒤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요. 하하.”
호쾌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트랙 위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김지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듯했다. 운동할 때가 아닌 평소 성격을 묻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운동할 때는 예민해요. 스스로 굉장히 몰아붙이는 편이고 목표가 있으면 될 때까지 훈련을 이어가거든요. 운동 관련해서는 절대 약해지고 싶지 않아요. 승부욕도 세고요. 모든 신경이 운동에 가 있어서 그런가. 친구들과 만날 때는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받아주는 스타일이에요. 먹는 것도 좋아해요. 식단 관리 하나도 안 하거든요.”
운동선수가 직업이고 훈련 강도 또한 높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김지은 선수가 가진 특장점인 높은 근육량이 그녀의 대답을 납득하도록 만들었다.
“맞아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매일 꾸준히 하는 것도 이유이지만 몸에 근육이 잘 붙는 편이에요. 시즌 중에는 야식을 금지하고 탄수화물 섭취 비율을 낮추어 몸이 무겁지 않도록 조절하는데 그래서 시합이 다 끝날 때는 오히려 살이 빠져 있어요. 보디 프로필 찍은 게 딱 그 시점이었는데 그때가 29살이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30살이 되기 전에 여자로서 무언가 기록해놓고 싶은 욕심.”

1992년생, 올해로 30살이 된 김지은 선수는 다가오는 9월 개최 예정이었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훈련과 시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은퇴 수순을 밟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는 그녀는 갑작스럽게 연기된 대회에 모든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며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은퇴는 생각할 수 있는 나이인 것 같아요. 하지만 대회가 2023년으로 미루어졌으니 그때까지 다시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없죠. 다행히 과거와는 다르게 제가 현재 운동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에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그걸 증명해보고 싶어요.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운동장 트랙 위에서요. 저는 제 달리기에 자신이 있어요.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고 또 동시에 즐기고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