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NE BOY BEYOND

박태환은 한국 수영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그를 스타로 만들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경기는 당시 지상파 3사를 모두 합쳐 무려 42.1%라는 시청률이 나올 정도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다. 같은 올림픽에서 박태환은 자유형 200m 부문에서도 은메달을 거머쥐며 2관왕을 차지했다. 그 열기는 4년 후인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이어져 자유형 200m, 400m 두 경기 모두에서 그는 은메달을 쟁취했다. 수영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박태환은 무려 2연속 올림픽 포디움에 올라선 것이다. 사실 올림픽 외에도 국제 대회에서 그의 수상 경력은 어마어마하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자유형에서만 3개의 금메달을 차지했고 총 7개의 메달로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다음해인 2007 멜버른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자유형 400m 우승, 자유형 200m 동메달을 획득했다. 화려한 수상이 증명하듯 당시 박태환의 기량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수영 영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금메달이 저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죠. 올림픽에서 입상한 운동선수라면 모두 같은 생각일 거예요.” 눈을 반짝이며 박태환이 말했다. 사실 놀라운 대답은 아니다. 하늘이 내려준다는 올림픽 금메달을 박태환은 한국 약체로 꼽혔던 종목인 수영에서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그가 입었던 수영복, 사용한 헤드폰은 품절 사태가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모든 수영 클럽이 가장 큰 활기를 띠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태환이 일으켰던 이런 신드롬은 어쩌면 모두가 예견했던 현상이었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레이스는 2007년 멜버른 세계 선수권 대회예요. 그때의 금메달은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아직까지도 생생해요. 당시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했어요. 연맹과 의견이 맞지 않아 이래저래 난항이 이어졌고 심지어 코치도 없었거든요. 입상을 기대하기는커녕 혼자서 겨우겨우 3개월을 준비하고 나갔던 대회였죠. 350m 지점까지만 해도 5위였는데 50m를 남기고 제가 1위로 역전을 했어요. 제 생각에는 그 경기를 발판으로 힘을 얻어 이듬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림픽이 끝나면 금방 인기가 사그라드는 여느 운동선수들과는 다르게 박태환의 이미지는 몇 년 동안이나 굳건했다. 나이답지 않은 겸손함을 바탕으로 진중한 그의 행동이 오히려 박태환을 누구보다 오래 높은 자리에 머물게 한 것 같기도 하다. “주목받는 것을 물론 좋아해요. 하지만 부담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아무래도 선수이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당시 대중에게 지금처럼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지 못한 건 어린 마음에 제 생활이 너무 없어지는 게 걱정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훈련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중요했고요.” 국민 남동생이라는 칭호에 관한 질문에 과분했지만 기분은 좋았다고 박태환은 대답한다. “그런데 이제 남동생일 수 없는 나이예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선수 생활을 해서 아직 어리게 보시는 분들도 많은데 앞자리가 3으로 바뀐 지 꽤 되었거든요. 하하.”
1989년생인 박태환은 올해로 34살이 되었다. 20살 때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탓도 있겠지만 국민 남동생, 여름 소년이라는 별명과 함께 웃을 때 피어나는 그의 싱그러운 미소는 박태환을 영원한 동생처럼 느끼게 한다. 185cm라는 큰 키에도 마냥 소년 같은 박태환. 그도 스스로 어른이 되었음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현재 운영하는 수영장 경영이나 방송 출연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조금씩 체감하는 것 같아요. 물론 방송은 10대, 20대에도 약간의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수줍음도 많았고 무엇보다 새로운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지금은 확실히 그때보다 마음이 단단해졌어요. 특히 수영장을 운영하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이 정말 많은데 일종의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해서 나름의 요령을 익혀 나가는 중이에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른이라는 게.”


수영장 대표원장, 박태환
박태환은 최근 자신의 이름을 건 두 번째 실내수영장을 오픈했다. 박태환이라는 세 글자를 올곧게 새긴 ‘박태환아쿠아틱센터’가 바로 그 이름이다. 4년 전, 박태환이 30살이 되었을 때 그는 비영리재단 사단법인으로 박태환수영과학진흥원을 설립했고 같은 해 여름에 ‘박태환수영장’을 열었다. 모든 목적은 체육 꿈나무 육성과 장학금 지원, 선진 수영 프로그램의 연구 및 보급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박태환 원장이라고 불리며 선수가 아닌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현역 선수로서 활동이 조금 뜸해졌던 그때 박태환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수영에 힘을 쏟고 있었다. “처음 열었던 ‘박태환수영장’은 어린이만을 위한 수영장이에요. 수영을 하고 싶어도 장소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수영을 포기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이 쓰였던 게 가장 큰 계기였어요. 저의 조카들 생각도 많이 났고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즐거운 놀이처럼 대하길 바라는 마음에 문을 열게 되었어요.”
지난 6월에 두 번째로 오픈한 ‘박태환아쿠아틱센터’는 모든 세대를 위한 공간이다. 더 놀라운 점은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전용 화장실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시도 꼼꼼히 새겨져 있고 가족이나 활동 보조인이 장애인과 샤워실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가족 샤워실도 갖추어져 있다. 범접할 수 없던 실력을 갖춘 엘리트 선수의 이름을 딴 수영장이지만 그 문턱은 어떤 경계도 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저는 해외훈련이 많았어요. 가까운 일본부터 시작해서 미국, 호주, 유럽 등에서 훈련하고 대회도 참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수영 문화를 접하게 돼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영 인구의 차이부터 다른 나라들과 비교가 안 되는 게 조금 속상했어요. 결론적으로는 인프라의 부족이죠. 그래서 제가 직접 수영장을 만들었어요. 저도 수영인으로서 작게나마 목소리를 내고 나아가 우리나라 수영 인프라 구축에도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요.”
선수가 아닌 원장이라는 칭호가 어색할 것 같다는 물음에 박태환은 웃으며 답변을 이어갔다. “대표보다는 원장이 조금 나은데 사실 재미있는 건 수영장에 다니는 어린 친구들은 제가 수영 선수인 걸 몰라요. 심지어 축구 선수로 아는 아이들도 있어서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웃기죠. 이제 정말 내 나이가 많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도 귀여워요.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어요. 제 바람은 수영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그저 여기에 와서 즐겁고 안전하게 물놀이를 하는 것이니까요.”

꽉 찬 스케줄 속 변함없는 자기 관리
2021년 초, 박태환은 방송에서 최초로 자신의 일상을 공개했다. 혼자 사는 집에서 아침을 차려 먹고 운동을 가고 쇼핑을 마친 후 조카와 시간을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하루를 꾸밈없이 공개하며 대중의 품에 성큼 들어온 것이다. “사실 집 공개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쑥스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어렸을 때부터 시합 외 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과거에는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가 굉장히 구분된 느낌이라 저에게 오는 모든 관심이 어렵기만 했는데 요즘은 그 경계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그런 변화된 인식이 다시 방송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도 있고요. 방송 일이 바쁘지만 이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도 많아져서 즐거워요. 배우는 것도 많고요.”
올해부터 몇 개의 고정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인터뷰 및 행사 요청도 많아지고 수영장 개관까지 겹쳐 일주일에 하루도 겨우 쉰다는 박태환. 운동은커녕 잘 시간도 부족해 보였지만 촬영을 위해 수영복으로 갈아입자 배신감이 들 정도로 매끈한 근육과 선명한 식스팩이 드러났다. “운동은 틈날 때마다 하려고 해요. 쉬는 날은 꼭 짐에 가고 시간이 안 나면 집에서 간단하게라도 해야 몸이 개운하거든요. 요즘은 방송 일이 많아서 시즌 때처럼 열심히 못하지만 근육이 빠지면 그만큼 체력도 약해지는 것 같아서 신경쓰는 편이에요.” 이어서 그는 어깨와 등 운동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을 이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박태환의 넓은 어깨와 단단한 등근육이 수영만으로 만들어졌을 리 만무하다. “요즘은 일주일 중 겨우 한 번 짐에 가면 다행인 것 같아요. 저만의 특별한 운동 루틴이 있는 건 아니고 남들과 똑같이 기구 운동을 해요. 개인적으로 잔근육을 선호해서 무게보다는 횟수를 많이 늘리려고 하고 소위 무게를 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부상 없이 체력을 보강하는 정도로 진행하고 있어요.”
박태환이 가진 근육에 비하면 다소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수영은 어떨까. 금메달리스트가 말하는 물속에서 스피드를 올리는 방법을 다시 질문하니 그는 한 치의 고민 없이 바로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말한다. 해석이 어려운 정답을 설명하는 천진난만한 그의 얼굴을 보니 박태환은 요령이나 겉멋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쉽지 않죠. 하지만 수영은 몸에 힘이 들어갈수록 오히려 지치기만 할 뿐이에요. 힘을 뺄수록 스피드가 붙기 때문에 수영이 어려운 종목인 것 같아요. 또 다른 방법은 킥 연습을 해보세요. 몸이 헬리콥터라면 발은 프로펠러라고 생각하면 돼요. 킥만 잘 차도 부족함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실력보다 모두가 수영을 그냥 재미있게 했으면 해요. 많은 사람이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저 접근성이 쉽고 즐거운 운동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이에요.”




박태환, 제2의 전성기
요즘 무엇에 빠져 있는지 묻자 박태환은 축구와 골프라고 대답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면서 운동을 하는 것에 큰 행복을 느낀다고도 전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죠.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개개인 모두가 굉장히 목표 지향적이잖아요. 물론 그게 큰 장점이기도 해요. 그런 목표의식 덕분에 빠른 성장을 이루었고 손흥민 선수, BTS 등 여러 면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즐기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인생이 즐거운 것 같아요. 만약 그게 수영이면 더 좋고요. 하하.”
누구보다 경쟁을 즐기며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나아간 수영 선수 박태환. 그가 대한민국에 안긴 찬란한 기록 때문일까. 아직 공식 은퇴를 선언하지 않은 그에게 다시 선수로서 약간의 희망을 걸고 싶기도 하다. “최근 한국 수영 국가대표의 기량이 정말 높아졌어요. 한국 선수 여럿이 함께 국제 대회에 출전하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나란히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저 때만 해도 국제 대회에 나가는 한국 선수는 저 하나뿐이라 외로운 마음도 조금 있었거든요. 공식적인 은퇴는 안 했지만 다시 몸을 만들고 기량을 올리는 데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라 많은 고민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수영장 운영과 방송도 이제는 제 공식적인 업무가 되었기 때문에 소홀할 수 없거든요.” 그럼에도 박태환은 지금이 또 다른 전성기이다. 물론 조금 달라진 모습이기도 하다. 더욱 어른스러워졌고 남자다워졌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기록이 아닌 모두를 위한 즐거운 수영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과거 수영 선수로서 저를 증명했다면 앞으로는 행정적으로 제 이름을 알리고 싶어요. 가장 큰 꿈은 우리나라에서 국제 규격의 수영장을 짓는 것이고 더 큰 바람은 그곳에서 국제수영연맹(FINA)의 승인을 받은 국제 대회까지 개최하는 것이에요. 물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희망할 수는 있어요. 수영은 저, 박태환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제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니까요.”
Mini Interview
생년월일 1989년 9월 27일
SNS ID @park_taehwan89
MBTI ESFJ(사교적인 외교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인턴〉, 마블 시리즈
최근 본 영화? 〈범죄도시2〉
잘하는 요리? 삼겹살 김치말이찜, 보쌈
일주일의 휴식이 주어진다면? 휴양지 여행
좋아하는 뮤지션? 빅뱅, 이승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