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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지 못하면 적응하라

재난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지만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저마다 다르다.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건 단연 젊은 남성들이다. 이들을 ‘C세대’라고 부른다.

끝없는 전쟁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장기화는 전염병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당연시되었던 관습 같은 것들은 붕괴되고 수많은 기업이 무너지며 C세대의 젊은 남성들은 방향을 잃었다. 더 큰 문제는 끝을 알 수 없다는 것.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적과의 싸움에서 맞서 싸워 이기지 못하면 함께 춤을 추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영국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최전선에서 연설가 윌 셀프가 팬데믹 카오스의 현실을 경험했다.

미래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 모두 바보가 된다. 한 친구가 올해 1월부터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전염병 소식을 전하며 주의하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봉쇄 조치가 시행될 때까지 영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녔다.
아마 내가 쓴 글이 <맨즈헬스>를 통해 발행되었을 때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걸린 확진자 수가 증가해 봉쇄 조치가 시행되어 서점들이 문을 닫았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 글을 아마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읽고 있을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역시 재도입해야 한다. 암울한 경제 전망은 더욱 심각한 비관주의로 치달을 것이다. 수천 개 사업체가 파산하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철학자들은 이 절망적인 현상을 두고 ‘귀납의 문제’라고 말한다. 귀납의 문제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겪은 젊은 남성들, C세대의 미래가 귀납의 문제로 인해 더욱 암울해지리라 생각한다.

당연하지 않은 현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알약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그동안 살아온 이 세계에서 늘 그랬듯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빨간 알약을 먹으면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가 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네오는 빨간약을 선택하고 머리에 꽂혀 있던 플러그를 뽑는다. 현재 세상은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난 뒤 펼쳐진 혼란과 같다. 우리가 현실을 구성하는 문화와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습관이 제도화된 것이다. 우리는 아침 9시에 집을 나가서 저녁 6시에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 이유는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애국가가 어디선가 흘러나올 때 즉각적으로 일어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진정으로 애국심이 넘쳐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장중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조건화된 것이다. 과거에 태양이 떴다고 내일 태양이 어떻게 뜰 수 있냐고 반문했던 임마누엘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팬데믹으로 인해 세상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예상 밖의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특히 고령 세대에게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겪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에 대해 그들만의 정의를 내려오며 살고 있다. 팬데믹은 그들이 믿고 살아왔던 정의를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젊은 세대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일을 처음 겪는 세대들에게 팬데믹으로 인해 펼쳐진 현실은 전례가 없던 일투성이다.

흔들리는 의료 시스템

C세대에게 현 상황을 불안하게 만드는 다른 측면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질병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규칙 테두리 범위 안에서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기술들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설렘만큼 두려움을 느낀다. 기차와 예방접종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열차와 이를 지탱하는 위협적인 모양의 바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사고를 겪으며 지금처럼 안전하게 되었다. 예방접종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나 전염병에 대한 의학 지식이 없는 시대에는 우두를 자신의 아이에게 접종시키는 것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점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기술 초기에 느꼈던 두려움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선진 의료 기술을 받아들이며 사는 데 매우 익숙해졌다. 기술 없이 나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 엄마는 어쩌면 출산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 불치성 골수 혈액 질환 때문에 면역억제제를 먹고 있는 나는 이 약 없이 몇 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빈부격차 없이 필요한 치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의료보장제도를 지지한다. 사회적 제도로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이 신념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백신이 없고 치료 방법도 전무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앞에서 의료보장제도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m 거리의 세상

불행하게도 전망은 어둡다. 영국의 비상사태에 대한 과학 자문 그룹 SAGE(Scientific Advisory Group for Emergencies)은 격리된 영국 어린이들의 3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되리라 예측했다. 내가 신뢰하는 심리치료사들은 젊은 남성들의 정신 건강 문제가 많이 증가했다고 알려주었다. 세대 간 마찰이 심화하여 많은 가족이 분열의 조짐을 보인다고도 전했다. 다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봉쇄 조치가 시작되고 나서 고객들의 우울증 증세가 300% 증가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45세 이하 남성들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하지만 25세 이하 남성들의 자살률이 팬데믹 직전부터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젊은 성인 4명을 자녀로 둔 아버지인 나는 팬데믹의 심리적 악영향이 젊은 세대에 끼친 영향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일을 하던 장남은 일감이 없어 시골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고, 캐스팅 에이전트인 딸은 언택트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18세 아들은 팬데믹이 시작되고 나서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자기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젊음은 가장 열정적인 시기이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고 거대한 현실을 자신만만한 태도로 바라보며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인다. 내 자식들은 정치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 역도, 수다, 댄스를 좋아한다. 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세계는 친구들과 함께 사회·문화·정치 이슈에 대해 밤늦게까지 토론하고 떠들썩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에서 신나게 파티를 즐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언제나 2m 거리를 두어야 하는 세상은 이들이 원하는 세상이 아니다. 팬데믹은 그 희망을 깨버렸다.

권위가 사라진 시대

팬데믹 이후, 젊은 세대들은 윗세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총리는 나라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젊은이들을 통솔할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젊은이들이 가진 충동성과 공격성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그와 함께 일하는 세계적인 명문 공립대학인 임페리얼 칼리지의 저명한 교수 닐 퍼거슨Neil Ferguson도 마찬가지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5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고 결국 영국 정부가 봉쇄 조치를 하게 만든 1등 공신이다.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요구한 봉쇄 조치를 자기가 깨고 애인을 만나러 가다가 발각되어 사퇴했다. 같은 규칙을 위반해 이슈가 된 보리스 존슨 총리의 고문 도미닉 커밍스Dominic Cummings는 사퇴하지 않았다. 이로써 젊은 남성들은 윗세대들의 권위를 신뢰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물론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남성들이 좀더 정치·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다.
현실은 분열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작은 집단들로 쪼개지기 위해 경주를 시작했다. 여성 없이는 남성이 없고, 이성애자 없이는 동성애자가 없으며 백인 없이는 흑인도 없다. 배타성과 포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진보주의자의 꿈은 팬데믹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무너진 교육 시스템

교육 문제도 심각하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남학생들을 멘토링하며 철학과 문학을 가르쳐오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뼈저리게 느낀 점은 학생 중 80%가 온라인 교육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사립학교에 다니는 특권층 아이들이다. 이들은 온라인 교육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했고 이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교육을 가르치던 내 지인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팬데믹으로 교육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교육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학교를 그저 학위 따기 위한 곳으로 여겼고 배우는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했다. 대학교 역시 지난 10년 동안 너도나도 단순히 학위를 발급해주는 업체로 바뀌기 시작했다. 몰래 가격을 올리기 위해 내용물은 줄이고 질소 가스를 더 많이 채워 놓은 과자 업체처럼 대다수의 대학은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학위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내가 교직에 있고 난 이후 한 해가 지날 때마다 학생들은 배움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학위를 따기 위해 다니는 소비자들처럼 행동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남발하는 학위와 학점 부풀리기 현상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평범한 학사 학위로는 가게 점원 정도밖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 이과 계열이 젊은이들에게 주목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적어도 이 분야의 학위는 제대로 된 경력과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국 정부는 올해 중등교육 자격(GCSE)을 시험 없이 수여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대학은 잇따라 학생들이 다음 학년으로 시험 없이 진급하거나 졸업 학위를 수여하겠다고 했다. 이는 현재 고등교육 기관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고 고등교육의 권위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최고의 대학 맨체스터 대학교가 있는 맨체스터가 시민 불복종의 진원지가 되고 불법 시위가 늘어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세대 갈등의 심화

내 아들은 봉쇄 기간에 소셜 미디어 속에서 펼쳐진 분쟁에 말려들었다.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는 젊은 세대들의 표현 영역이 온라인으로 확장된 곳이다. 팬데믹이 가져온 의료 및 교육 시스템 붕괴, 정부의 무능 등에 대해 즉각적인 감정에서 발현된 메시지들을 주고받는다. 열띤 논쟁을 벌인 젊은 남성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쯤은 우습다는 듯 밖으로 나가 조깅하거나 운동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피하는 건 나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이다.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을까 하고 접촉하지 않기 위해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그들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피한다. 우리는 봉쇄 조치를 강화해 젊은이들의 혈기와 자유를 억제해야 할지, 우리가 그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있다.
극우 자본주의자를 비롯한 어떤 이들은 정부의 봉쇄 조치는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고령 세대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은 것을 두고 노인들을 위해 젊은 세대의 생산적 활동을 희생시켰다는 뜻이다. 나는 이러한 비판이 타당하다고 생각될까봐 두렵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온 젊은 세대가 어떻게 가격 이상의 가치와 함께 사는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에세이를 낙관적인 전망으로 끝내고 싶지만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끝내게 되어 아쉽다. 그 대신 나는 나에게 이 지면을 할애해준 편집자가 향후 팬데믹 시기에 젊은 남성의 정신 건강에 대한 나의 비전과 생각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