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러닝은 언제나 설레고 멋진 여행

2023 태국 베통 정글 트레일 by UTMB에서 만난 고민철 선수 인터뷰

고민철 선수는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어린 딸의 손을 잡은 채로. 가족과 함께 렌터카로 편하게 오는 줄 알았는데 말레이시아 국경에서 차를 두고 와야 하는 예상 밖의 일이 생겼다고 한다.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레이스 브리핑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그는 행사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탁월한 여행 플래너인 아내와 천연 비타민 같은 딸 본디가 함께 있으니 든든해 보였다. 고민철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100K 레이스에 도전한다. 도착하자마자 짐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브리핑과 엑스포 방문 등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칠 법도 한데 그는 연신 밝고 다정하며 푸근했다. 따뜻한 대지처럼 온화한 기운이 풍겼다. “대회 분위기도 좋고 사람들도 모두 친절하고 호텔에서 창문을 여니 밀림 같은 풍경이 들어오면서 너무 예뻤습니다. 기대감이 생겼죠. 한국의 겨울에서 갑자기 여름으로 날아왔기 때문에 몸이 적응할지가 걱정이긴 하지만 즐겁게 뛰어볼 생각입니다.” 고민철은 이번 대회에서 13시간 완주, 5위권 입상을 목표로 잡았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된 100K 레이스에서 그는 초반부터 줄곧 3등으로 경기를 잘 끌어갔다. 하지만 오후 5시쯤, 고민철 선수의 레이스 포기 소식이 들렸다. 그의 경기를 라이브로 지켜보면서 피니시라인에서 기다리고 있던 터라 조금은 의아했다. 소식에 따르면 오전부터 이미 그는 더위를 먹었고 열사병 증상으로 더 이상 경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우려대로 날씨에 발목을 잡히고 만 것이다.

Editor 정혜욱 Photograph Amazean Jungle Thailand by UTMB (amazean.utmb.world) Cooperation 호카코리아

경기를 잘 이어가다가 마지막에 포기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3등으로 경기를 진행했고 1, 2등 선수들은 나보다 기량이 뛰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오전 10시가 넘어가면서 햇볕이 너무 강해졌다. CP에 도착하면 의자에 앉아 쉬어야 했고 점점 지쳐갔다. 77km 지점 CP에 도착했을 때, 1위로 가던 중국 선수가 포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CP에서 20분 이상 뒤처져 있던 두 명의 선수에게 잡히면서부터 힘이 빠졌다.

경기 환경이 좋지 않았나? 새벽 5시에 출발할 때는 괜찮았는데 정오쯤 되니 무척 더워졌다. 거의 폭염 수준이었다. 정글 그늘 속이 아닌 태양이 직접 내리쬐는 곳은 지열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늘이 없는 오르막을 오를 때는 몇 번이고 멈춰서 호흡을 해야 했다. 코스 난이도도 만만치 않았다. 급경사의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속도를 내기 힘들었고, 넘어진 통나무가 도처에 있어 이를 넘어야 하는 곳에서는 다리에 쥐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경기 환경보다는 날씨가 문제였다.

지금 몸 상태는 괜찮은가? 대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니 몸에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포기하지 말고 걸어서라도 계속 갔다면 4위라도 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당시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날씨 적응이 너무 힘들었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대회 중에 이번에 처음으로 포기를 했다. 그것이 속상하다.



그래도 몸이 괜찮다니 다행이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맨즈헬스> 독자에게 자기소개를 해달라. 이름은 고민철, 1987년생이고 달리기 9년 차의 트레일 러너이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제주에서 아기와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즐겁게 뛰고 있다.

트레일 러닝과의 인연은? 20대 후반,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나갔던 마라톤 대회를 시작으로 트레일 러닝을 알게 되었다. 그때가 29살이었는데 20대 마지막에 뭔가 나를 증명하고 내 능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서 코리아 50K 대회와 고비사막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 너무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니 묘한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때부터 트레일 러닝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 대회 준비는 많이 했나? 한 달 정도 준비했다. 작년 11월에 마지막 트레일 러닝 대회를 끝으로 겨울에 몸을 좀 만들고 싶어 그냥 달리기를 많이 하고 있었다. 3, 4월에 시즌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트랜스 제주 안병식 디렉터님에게 이 대회 참석 제안을 받고 바로 승낙을 했다. 특별한 훈련보다는 늘 하던 대로 훈련을 해왔다.

주로 훈련은 어디서 어떻게 하나? 아이를 키우고 농사일을 하다 보니 이른 새벽에 동네를 뛰는 코스에서 훈련한다. 집 근처에 항몽유적지라고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자주 간다. 해뜨기 전에, 가족이 깨기 전에 나가서 10~15km를 주 5회 정도 뛴다.

운동할 환경이 좋아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물론이다. 올레길도 있고, 한라산도 있고 오름도 있고 바다도 있고. 그래서 나가면 아주 좋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다양한 오르막 내리막이 좀 없다. 굽이굽이 산길이 없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지척에 자연이 함께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다.

호카 선수가 되었다. 호카는 UTMB 메인 시리즈의 스폰서이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선수도 많이 있다. 훈련을 더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이번에 호카 선수가 되면서 개인적인 목표와도 잘 맞게 되었다. 3년 전부터 계속 대회나 훈련 때 모두 호카 신발을 신어왔다. 내가 좋아하고 잘 맞는 브랜드의 선수가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대회 신발로 호카 스피드고트 모델을 선택한 이유는? 스피드고트는 호카의 트레일러닝 라인 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또 누구나 신었을 때 만족하는 모델이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장거리 러닝이다 보니 쿠션이 풍부하면서도 접지력이 좋은 신발을 선택하고 싶었다.

대회에 따른 신발 선택 기준이 있나? 첫 번째는 거리이다. 장거리는 발에 피로가 많이 쌓이므로 무게가 좀 있더라도 쿠션이 좋은 것, 단거리는 가벼운 모델로 신는다. 텍톤 X 모델은 100km까지도 괜찮은 신발이다. 처음 가는 길이고 또 작년 트랜스 제주 대회에서 스피드고트를 신었는데 성적도 좋았고 발이랑 잘 맞았다. 그래서 다시 가져오게 되었다.

호카는 로드 러닝화가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호카는 트레일 러닝화로 매우 유명하다. 카본 X, 로켓 X 라는 모델이 있었지만 대형 브랜드 신발에 비해 로드 러닝화가 조금 약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로켓 X2’라는 카본 러닝화가 출시되어 미리 신어봤는데 상당히 좋았다. 무게도 가볍고 쿠션도 좋다. 장거리, 단거리에 다 좋다. 통기성이 좋은 갑피에 쿠션이 말랑말랑해서 피로가 많이 없고 탄성도 좋다. 쿠션감과 탄성의 조화가 매우 훌륭하다. 기대해도 좋은 러닝화다. 미드솔이 바뀌어서 이전 버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발이라고 보면 된다. 로드 대회에 나간다면 꼭 신을 예정이다.


트레일 러닝 훈련법이 따로 있나? 장거리를 많이 뛰다 보니 스피드 훈련보다는 지구력 훈련을 많이 한다. 평소에는 다양한 오르막 구간을 천천히 몸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훈련하고 주말에는 30~40km의 정도로 장거리 훈련을 한다. 거리보다는 상승 고도 훈련이 가능한 곳에서 뛴다. 그리고 예전에 멋모를 때 대회에 나가면 뛰다 걷다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고 계속 뛴다. 몸 상태를 보면서 숨이 너무 가쁘거나 지치면 페이스를 늦춘다. 몸 상태에 맞춰서 에너지를 한 번에 다 쓰지 않고 아껴서 장거리를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2023년 트레일 러너로서의 목표는? 고향 제주에서 열리는 트랜스 제주 대회가 목표이다. 작년에 1등을 했지만 해외 선수들이 별로 없었다. 올해는 많이 온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홈그라운드에서 한번 겨뤄보고 싶다. 실력이 뛰어난 월드 클래스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함께 겨뤄보고 싶은 선수를 꼽아 본다면? 미국 호카에 헤이든 혹스Hayden Hawks 라는 선수가 있다. UTMB 인덱스 점수가 920점 정도 된다. 이번에 뉴질랜드 대회 100K 부문에서 7시간 42분으로 2등을 했다. 엄청난 스피드를 가진 선수이다. 마라톤으로 치면 2시간 10분대에 완주한 정도? 당연히 클래스가 다른 선수지만 그 선수하고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그 차이를 같이 뛰어보면서 알아보고 싶다.

UTMB 몽블랑 출전 계획은 없나? 올해는 UTMB 몽블랑 계획은 없다. 우선 UTMB 시리즈 대회들에 도전해 본 다음에 내년에 좋은 성적으로 UTMB 몽블랑에 도전해 볼 예정이다. 원래 UTMB 대회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에 김지수 선수가 UTMB에서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김지수 선수는 롤모델이기도 하고 한국 선수가 저렇게 할 수 있음에 놀랐다. 몸을 더 만들고 대회 경험을 많이 쌓은 뒤에 도전하고 싶다.

언제까지 트레일 러닝을 할 것인가? 일단 40대 중반까지는 선수로 활동하고 싶다. 이렇게 열심히 뛰는 것은 5년? 아니면 7, 8년 정도 되지 않을까? 미래의 일이지만 그 후에는 제주에 아웃도어 매장을 오픈하고 싶다. 카페 분위기에 트레일 러닝화와 장비도 팔고, 제주 가이드와 트런 가이드도 하면서 가족과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

나에게 트레일러닝이란? 여행이다. 나는 트레일 러닝을 하면서 늘 여행을 한다. 제주에서도 모르는 코스에 가서 뛰어보고 다른 지방 대회를 갈 때도 처음 가는 코스를 끼워 넣곤 한다. 그런 것이 설렘과 여행의 개념으로 많이 다가오는 것 같다. 트레일 러닝을 하면서 많은 곳을 둘러보게 되었고 오늘 여기 태국 베통에도 오게 되었다. 이 여행의 목적지는 없다. 여행이니까 결국 여행 잘하고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것이 여정의 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