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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충성!영원한 뽀빠이, 이상용

평범한 사람들의 도전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없다. 단지 평범한 사람들이 일어나 맞서는 위대한 도전이 있을 뿐이다”라는 미국의 명장 윌리엄 프레데릭 홀시William Frederick Halsey, Jr의 말처럼. 코리아가 창간 16주년을 맞아 준비한 키워드는 ‘도전’이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여성, 건축가에서 패션 모델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시니어 모델, 한국 스노보드 역사상 최초의 메달리스트, 동양인 최초로 머슬마니아 세계 챔피언의 꿈을 이룬 사나이 등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굳은 신념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도전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창간 16주년 특집 인터뷰가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올해 나이 79세, 눈뜨는 모든 순간을 도전으로 만드는 국민 MC 이상용은 여전히 우리들의 영원한 뽀빠이다.

드높은 곳에 올라 대한민국을 호령했던 전설적인 MC가 있다. 다부지고 건강한 근육질의 모습으로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며 코미디 프로그램에 첫 등장한 순간부터 대한민국은 그에게 열광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맡으며 얻었던 별명 뽀빠이는 그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장교 출신의 이력으로 군인 위문 예능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 단독 MC도 거머쥐었다. 대한민국의 단 하나뿐인 뽀빠이, 방송인 이상용은 그렇게 두려움 없는 매서운 독수리처럼 단번에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그때가 46세였다. 하지만 그 전설이 영원하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더니 한동안 잊혀지기도 했다. 화려한 복귀는 아니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돌아와 다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 〈맨즈헬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명불허전이 무엇인지, 프로는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국민 뽀빠이 이상용입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요. 작고 나이도 많은 나를 이렇게 찾아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정의 무대〉 이후 짧지 않은 공백이 있었고, 최근 다시 활발하게 방송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섭외 전화가 섭섭지 않게 오니 나로서는 아주 고맙죠. 그래서 더 건강 관리에 소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긴 시간을 돌아온 만큼 오래오래 방송을 하고 싶으니까요.
사실 제가 미숙아로 태어났어요. 내가 태어난 1944년도는 거의 모든 집이 가난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인큐베이터는커녕 병원에 드나드는 것도 일상적이지 않았죠. 그래서 부모님이 갓 태어난 저를 땅에 파묻었어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거죠. 지금이야 뜨악할 수 있겠지만 옛날에는 그런 일이 빈번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시 12살이었던 우리 막내 이모가 저를 구하러 왔기 때문이에요. 어찌 보면 땅에서 두 번째로 태어난 셈이죠. 근데 뭐 아니나 다를까. 워낙 약하게 태어난 탓에 여섯 살에 첫걸음마를 떼었고 열두 살 때까지도 각종 병에 시달렸어요. 책가방 들기도 버거워 아버지가 통학을 도와주셨을 정도이니 말 다했죠.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덕분에 고등학교 입학 때는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졸업할 때는 ‘미스터 대전고’라는 육체미 상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평범해지기 위한 나만의 불굴의 노력이고 도전이었어요.

대한민국의 모든 국군장병 여러분께 충성!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내 전성기는 〈우정의 무대〉 그 자체예요. 하지만 8년 동안 쉬지 않고 매주 전국 팔도를 돌며 8,000명이 넘는 관중을 다루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죠.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요즘 말로 제가 군통령이었기 때문이에요. 당시는 복무 기간이 무려 30개월이었고 편지를 제외하면 외부와 거의 단절된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심지어 눈에 띄면 긴 포상 휴가까지 주어지니 제가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무대에 올랐을 때 퍼지는 나를 향한 그 뜨거운 함성은 정말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프로그램이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3~4살 어린 꼬마들도 뽀빠이 아저씨라고 달려들며 경례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몸은 부서질 것 같았지만 사랑과 감동이 넘치는, 말 그대로 사람 냄새나는 따듯한 방송이었기 때문에 8년간 이어갈 수 있었죠.
당시에는 영원할 줄 알았어요. 누명을 쓰고 수사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요. 모든 조사가 끝나고 3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실추된 명예는 돌이킬 수 없었어요. 결국 방송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관광버스 가이드를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왜냐고요? 그때보다 더 잘할 수 있으니까.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2보 후퇴하면 3보 전진해야죠
복귀하고 가장 적응이 안 되었던 건 달라진 방송가의 분위기였어요. 그저 평범한 일상을 노출하고 요리, 반려동물 등을 주제로 안락한 스튜디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지만 모두 그것에 더 열광하죠. 시대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비단 내 몸은 편해졌을지 몰라도 닥친 변화와 새로움 때문에 오히려 매일 도전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절대 바꾸지 않는 것도 있어요. 기상은 새벽 3시, 매일 40kg 역기를 600개씩 들고 책도 꼭 한 권씩 읽습니다. 술, 담배, 커피는 평생 단 한입도 대지 않았고 쓸모없는 모임이라고 생각되면 절대 참석하지 않아요. 몸은 최대한 많이 움직이고 머리로는 건강한 생각만 하려고 합니다.
물론 나는 내년이면 80살이고 주변에서 모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묻죠. 노력이에요. 그리고 정신력입니다. 나이는 숫자이고 지금 살아 있는 나는 그대로 전진,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제 좌우명이 있어요. ‘가버린 어제를 후회하지 말고 오지도 않는 내일을 두려워 말라.’

국민 뽀빠이, 영원한 충성을 약속합니다
겨우 몸이 좀 풀린 것 같았는데 코로나-19가 발생해 처음에는 암담하고 또 속상했습니다. 모든 게 다시 멈춰버렸으니까요. 그런데 또 잠깐 넘어진 셈 치는 거죠. 넘어졌다는 건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누가 나를 시험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보란듯이 일어나야죠. 뛸 수 있다면 뛰면 되고요.
꿈이 있다면 완전한 실버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맡아보고 싶어요. 유익하고 건강하고 감동을 담은 내용으로 울림을 퍼뜨리고 싶습니다. 물론 처음 타깃은 나와 같은 연령층이겠지요. 하지만 〈우정의 무대〉도 전 세대를 열광하게 만든 것처럼 진심이 담긴 이야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결국 통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서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모든 인생을 책 한 권에 담았어요. 오롯이 놓인 책처럼 저도 이제 어디 가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보려고 합니다.
80년을 가까이 살아보니 인생이 별거 없습니다. 그저 건강하세요. 아프지 마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국민 뽀빠이의 명령입니다. 그냥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