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사분기 체크포인트

비가 오면 무릎이 시큰거리듯 만연한 가을이면 그간 도전했던 대회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마라톤을 비롯해 다양한 대회가 많았는데, 지금도 여전합니다. 러닝 대회 또한 그 형태를 다양화하여 많은 행사가 집중적으로 개최되곤 하지요.

예전에 진행했던 어반애슬론도 독특한 행사 중 하나였고, 언젠가 다시 기획하고 싶은 대회입니다. 사이클 대회 또한 가리지 않고 출전했는데, 사이판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헬 오브 마리아나’를 잊을 수 없습니다. 사이클 대회 중 가장 위험한 레이스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코스 길이가 100km로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험난한 절벽들이 위협하는 깎아지른 지형의 코스와 급경사의 산을 오르는 코스까지 다양한 ‘고생’을 할 수 있는 대회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이면 온몸이 근질근질해지기도 합니다.

그중에 가장 인상깊은 대회는 아무래도 여드레 동안 이어졌던 몽블랑 트레일러닝 대회UTMB일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트레일러닝 대회입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게 할 만큼 혹독합니다. 그렇기에 대회에 대한 체험은 ‘고통과 고뇌’의 기록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왜 그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역시 지나보면 성장을 위한 발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60km를 8일간 트레일러닝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고통스런 기억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긴 하지만요. 매번 꼴찌로 들어오면서 온몸을 매일 얻어맞은 듯한 저녁을 맞이하곤 했었지요. 그런데도 불면의 밤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짧게는 25km에서 길게는 40km를 걷거나 뛰거나 하면서 온몸을 혹사했는데도 말입니다.

함께 참가했던 러닝 파트너 또한 서로의 잠버릇을 감내하면서 짧은 밤을 버텼을 터입니다. 잠자리가 편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형편이 나은 편이었습니다. 대회 참가자 대부분은 대회운영위원회에서 제공하는 ‘공동숙소’에서 취침하는 게 기본 옵션입니다. 학교 체육관이나 강당입니다.

참가비만 해도 적은 액수가 아니었고, 항공비와 잡비 등을 생각해보면 개인으로는 부담되는 금액이죠. 보통은 제대로 경험해보자는 생각이었고, 불편한 잠자리까지 감수하자는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험난한 체험이어서인지 여드레의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기억납니다.

그런 기억 중에 가장 신나는 순간이 언제일까요? 바로 코스 중간의 체크포인트입니다. 물이나 이온음료와 프로틴바나 과일 같은 행동식 등을 제공해주는 기점입니다. ‘음수대’라고도 하고, 일반적으로는 ‘체크포인트’라고들 하지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몽블랑 트레일러닝 대회는 ‘푸드 존’이라고 매력적인 이름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의 역할이야 일차적으로 쉬어가는 포인트이자, 다른 코스 공략에 있어서 전략을 세워보는 지점이거든요. 심신의 컨디션과 코스 전개 전략을 ‘체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적인 대회에서 ‘푸드 존’이라는 의외의 명칭을 썼습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고생고생하고 다다른 지점에서 고작 물이나 마시고, 체크만 해서 힘이 나겠냐 말입니다. 푸드 존. 저는 매일 이 푸드 존을 향해서 달려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봐야 콜라이고 수박 아니면 프로틴바이고 케이크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그 고생 후에 먹는 맛이, 그 잠깐의 휴식이 얼마나 달았겠습니까. 사실 일본의 대회만큼 음식이 독특한 곳도 없습니다. 러닝, 사이클, 트레일러닝 대회 등 십여 차례 참가했지만, 체크포인트에서 제공하는 음식들은 실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지역의 특산물로 음식을 내놓거든요. 우동, 메밀국수, 주먹밥, 돈가스, 생선구이, 튀김 등 보통의 일식집에서 받을 만한 음식들이 제공됩니다. 음료 또한 차는 기본이고, 메실차나 우렁차까지 마셔보기도 했습니다. 이건 뭐, 코스 중간에서 쉬었다 가라는 것인지, 배채우고 가라는 것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중간 기점이 이러하니 피니시라인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오코노미야키는 매우 평범한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몽블랑 대회의 푸드 존이든, 일본의 간이 휴게소든 중간지점에서 모든 면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합니다. 남은 코스를 힘차게, 의욕적으로 공략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대나무의 마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다시피 대나무 줄기는 위로만 자라고 둘레는 굵어지지 않지요.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한번 ‘단단해지는’ 지점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이제 올해 마지막 체크포인트인 4사분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오긴 했지만, 남은 3개월에 따라 2019년 결실이 달라지겠습니다. 4사분기 체크포인트에서 새로운 심신으로 완주하길 바라고, 기왕이면 좋은 성과로 마무리하기를 기원합니다.

<맨즈헬스>발행인
백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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